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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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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연합당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
약칭 Cons
Tories
상징색 파랑
이념 보수주의[1]
경제적 자유주의[1]
영국연합주의[2]
스펙트럼 중도우파[3][4] ~ 우익
당원(2022년) 172,437[5]
당직자
당수 리시 수낵
역사
창당 1834년
선행조직 토리당
통합된 정당 토리당
자유연합당
내부 조직
중앙당사 잉글랜드 런던 매튜 파커가 4, SW1H 9HQ
유럽의회 교섭 단체 유럽 보수와 개혁
외부 조직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의석
상원
251 / 758
하원
357 / 650
보수당의 창당자 로버트 필 총리

보수연합당(영어: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 줄여서 보수당(영어: conservative party)은 영국보수주의·영국연합주의 성향 정당으로, 노동당과 함께 영국의 두 주요 정당 중 하나이다. 현재 영국의 집권여당으로, 2010년부터 집권하여 가장 최근의 선거인 2019년 영국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정당의 성향은 우파[14]에서 중도우파[15]이며 세부적으로는 일국보수주의, 대처리즘, 전통보수주의 등 다양한 이념을 아우르고 있다. 보수당은 해마다 보수당 전당대회를 개최하며 당내 중진인사들이 정당정책을 도모한다.

보수당은 1834년 토리당의 후신정당으로 창당되었으며 19세기 자유당과 함께 영국 정계를 주도하는 정당이었다. 특히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누리던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 집권기에는 정계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행사하였다. 1912년에는 별개의 정당이던 자유연합당이 보수당에 합류함으로서 '보수연합당'이라는 정식명칭을 지니게 되었다. 1920년대부터는 자유당의 몰락과 함께 노동당이 주요 상대정당으로 부상하였으며, 보수당과 노동당간에 집권 다툼을 위한 노력이 20세기 말까지 계속되어 왔다.

보수당은 예로부터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해 왔으나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정권 이래 자유시장규제완화, 민영화, 시장화 등 경제자유주의 정책을 주로 채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영국의 구성국에 대해 연합왕국으로 남아야 한다는 영국연합주의 성향으로서 아일랜드 통일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웨일스 독립운동에 반대하며 지방분권에도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과거 대영제국의 유지와 지속에 힘을 보태는 입장을 보여 왔으며, 유럽 연합 (EU)에 대해서는 친유럽주의 파벌이 혼재된 가운데 유럽회의주의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회현안에 대해서도 사회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해 왔으나 지금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는 파벌이 있는가 하면,[16][17] 보다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파벌도 존재한다.[18][19] 국방정책의 경우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며 나토 회원국 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근대 영국의 정치사에서 영국은 도시와 농촌 간의 정치성향 분열이 심화되어 왔는데,[20] 보수당의 경우 잉글랜드의 농촌과 교외지역의 부유한 주택소유자와 사업가, 농부와 중산층을 주요 지지층으로 삼고 있다.[21][22][23][24][25] 다만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에는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성향인 노동계층 유권자들을 겨냥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26][27][28][29]

역사[편집]

기원[편집]

보수당은 17세기에 형성된 토리당에서 유래되었다. 토리당은 이전 윌리엄 피트가 총리로 집권하였을 때에는 주로 '독립 휘그당'이나 '피트'파로 불리었으며 피트가 죽은 후 다시 토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보수' (Conservative)라는 이름은 1830년부터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1834년로버트 필이 새로 대표에 취임하면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필은 휘그당의 차별성으로 당을 현대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보수당으로 재창당하였으며 그는 이 이름을 토리당이 뛰어든 선거전의 매니페스토에 사용하면서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하였다.[30] 로버트 필1841년부터 1846년까지 집권하였으나 곡물법 폐지로 정권이 자유당으로 넘어가며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자유연합당과의 협력과 합당 (1867년~1914년)[편집]

19세기 후반 영국의 정치사는 투표권 확대로 대표되는데, 당시 보수당도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백작벤자민 디즈레일리 정권 시기에 이르러 대중을 향한 정치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특히 벤자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1867년 개혁법 제정으로 선거권 확대를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자유당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 총리가 선거권 추가 확대를 추진하자 보수당은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1884년 개혁법을 제정함으로서 대세에 굴복하였다. 1886년 보수당은 스펜서 캐번디시조셉 체임벌린이 이끌던 신당 자유연합당과 선거연합을 이루었으며 로버트 세실 총리와 아서 밸푸어 총리를 거치며 집권에 성공하였다.

1905년 보수당은 자유무역 관련 현안으로 분열 위기를 맞았다. 자유무역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던 체임벌린과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당내 반대파에 앞장서던 윈스턴 처칠로 갈라진 것인데, 밸푸어 총리는 체임벌린의 손을 들어 보호무역주의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다.[31] 결국 처칠은 야당인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며 1925년 복당하게 된다. 탈당자가 늘어나자 밸푸어 총리는 당내 신임을 잃고 그해 12월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총리로는 자유당의 헨리 캠벨배너먼이 취임하여 1906년 1월 조기총선을 선언하였으며 그 선거에서 자유당은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자유당 총리 H. H. 애스퀴스가 수많은 개혁법안을 제정하는 동안 자유연합당은 기초적인 당조직의 복구에 힘썼다. 다음 총선은 1910년 1월12월 두 차례에 걸쳐 치러졌으나 보수당과 자유당의 의석수 모두 어느 한쪽을 압도하지 못했고, 자유당이 아일랜드 의회당과의 연정에 성공해 집권하게 되었다.[32][33]

1912년 자유연합당과 보수당은 정식으로 합당하여 '보수연합당'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 아일랜드 독립 문제가 불거지자, 보수당은 아일랜드의 자치권 부여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며 연합주의 정당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자치에 반대하는 연합주의 성향의 정치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연합주의 동맹이 1891년 창당되었는데, 이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하원에서 보수당 원내총무를 맡게 되었고 1922년까지 사실상의 보수당 아일랜드 지부로서 활동하였다.[34][35] 1911년 당대표로 취임한 보너 로 체제부터는 당내 극우파의 억제와 당조직 강화를 이끌어 내면서 위축됐던 당내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며, 사회정책의 건설적 논의에 약간의 진전을 이루어냈다.[36]

두 차례의 세계대전 (1914년~1945년)[편집]

두 차례의 보수당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당시 그전까지 전쟁에 거의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자유당과는 달리 보수당 지도부는 독일에 맞서 프랑스를 돕는 방안에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자유당 정부는 전쟁 발발 후에도 정권을 유지하다 1915년 포탄 부족으로 인한 대란이 발생하면서 전쟁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으로 명성을 크게 실추하게 되었다. 결국 1915년 5월 자유당은 보수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거국일치 내각을 조각하게 되었다. 1916년 자유당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가 취임하였으나 머지않아 자유당의 분열사태가 벌어졌고 이어지는 1918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승하며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점부터 자유당은 단 한번도 집권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1920년부터는 자유당을 대신해 노동당이 보수당에 맞서는 주요정당으로 부상하게 되었다.[37]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보수당은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었으며 특히 아일랜드 연합주의 성향과 더불어 선거 3연패로 인한 후유증이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당내 분위기가 결속되고 새 지도부를 발굴하는가 하면 아일랜드 문제나 사회주의, 선거제도 개편, 경제개입 문제에 관한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고 애국심을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다. 특히 노동당의 부상에 따라 이를 경계하기 위한 차원에서 반사회주의 성향을 새롭게 띄게 되었으며, 선거개혁이 화두에 오를 떄에도 자신들의 주 지지세력인 잉글랜드 농촌지역에 대한 보호에 힘쓰게 되었다.[38] 여기에 1920년대 들어 새 유권자로 떠오른 여성들을 향해 애국주의를 중심으로 공략해 나갔다는 평가다.[39]

1922년 영국 총선에서 거국일치 내각이 종결됨과 동시에 보수당이 단독 집권하게 되었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보너 로는 건강 문제로 총리 자리를 스탠리 볼드윈에게 넘겼다. 이듬해 1923년 영국 총선에서 램지 맥도널드 총리의 노동당 소수정부가 출범하였으나 다시 1924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제1당으로 복귀함에 따라 집권하게 되었다. 5년 후인 1929년 영국 총선부터는 노동당 소수정부가 출범하였다. 이 시기 보수당은 1923년 노엘 스켈턴이 주창한 '재산소유 민주주의' (property-owning democracy)가 알려지면서 당의 핵심원칙으로 삼게 되었다.[40]

1931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다시 야당으로 되돌아갔으나 보수당 역시 과반을 넘기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당과 노동당의 당내파벌, 즉 '국민자유당'과 '국민노동당'으로부터 의원수를 보완받아 연립내각을 꾸렸다.[41]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였던 1940년 5월에는 전시상황임을 감안하여 정당간의 균형잡힌 내각참여가 보장된 윈스턴 처칠 총리의 국가정부가 출범하였으며 1945년 종전까지 집권을 이어나갔다.[41]

전후 체제 (1945년~1975년)[편집]

해롤드 맥밀런 총리

전쟁 직후 치러진 1945년 영국 총선에서는 복지국가를 주창한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야당으로 되돌아갔다.[42][43] 이 시기 보수당은 식량배급과 물자난, 긴축정책, 관료주의 등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념 면에서도 노동당의 사회주의, 평등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에 주목하여 중산층 유권자들을 결집시킴으로서 다음 총선에서의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44]

한편 보수당은 정당조직의 현대화에도 힘썼다. 1947년 보수당은 혼합경제노동권 보장에 관한 '전후합의' (post-war consensus)를 승인하는 내용이 담긴 〈산업헌장〉 (Industrial Charter)을 발행하였다.[45] 1948년에는 데이비드 맥스웰 파이프가 주도하는 정당개혁을 위한 연구위원회가 출범하여 1949년 '맥스웰 파이프 보고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 보고서에는 보수당 하원의원들의 다양성을 높이려면 지역구 조직이 후보자들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요구하는 관행을 금지해야 하며, 중앙당 차원에서의 모금운동을 확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담겼다. 실제로 이 같은 관행은 지역구 정당조직에 실질적인 권력이 돌아가며 후보자들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46] 윈스턴 처칠 당대표도 정당조직의 현대화를 위해 프레데릭 마퀴스를 보수당 의장으로 임명하여 지역 당조직을 재건하고 당원권과 활동자금, 주요현안에 대한 전국적인 호소력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였다.[47]

1951년 영국 총선은 득표율에서는 노동당에 뒤졌으나 의석수에서 근소차로 앞서며 승리하였으며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로 다시 취임하였다. 보수당은 1954년 배급제를 중단한 것을 제외하면 노동당이 가꾸어놓은 복지국가 정책을 상당수 받아들였으며 '전후합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48][49] 노조에 대해서도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는가 하면, 1953년 철강과 도로운송 사업을 민영화하기도 하였다.[50]

이후 보수당은 1955년 영국 총선1959년 영국 총선에서 제1당 다수당에 오르며 윈스턴 처칠,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앨릭 더글러스흄을 차례대로 총리로 배출하며 13년간의 집권을 이어갔다. 처칠의 후임으로 나선 앤서니 이든은 수에즈 위기를 자초하며 굴욕을 맞이하였으나 그의 뒤를 이은 해럴드 맥밀런은 외교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국내현안과 경제적 번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시기 보수당 정권은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무역규제와 국가개입의 최소화를 꾀하였으며, 연금수당의 실질인상률 49%, 질병실업수당 실질인상률 76%, 보충수당 실질인상률 46% 등의 소득증진을 이끌어냈다.[51]

그러나 13년간의 보수당 집권기는 '낭비된 13년' (Thirteen Wasted Years)이란 유명 슬로건으로 비판받았으며, 야당인 노동당의 집중 공세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보수당 내부의 우익 파벌로부터 사회주의 정책에 관용을 베풀고 노조의 합법적 권리를 규제하지 않으려는 중앙당의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또한 해럴드 맥밀런과 앨릭 더글러스흄이 당대표가 되는 과정에서도 이른바 '매직 서클' (Magic Circle)로 불리는 불투명한 협의과정으로 선출되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으며,[52][53] 결국 1964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에 정권을 빼앗긴 것을 계기로 공식적인 당대표 선거절차가 마련되어 1965년 에드워드 히스가 신임 당대표로 취임하게 되었다.[54]

에드워드 히스 총리

1970년 영국 총선에서 재집권하게 된 에드워드 히스 총리의 보수당은 유럽경제공동체 (EEC) 가입을 적극 추진하여 실현시켰으며, 이후 유럽연합 (EU) 내 영국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EEC 가입은 친유럽이냐 반유럽이냐에 따른 성향차로 인하여 보수당 내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1973년부터 2년간 지속된 경기침체와 더불어 영국 산업의 쇠퇴와 연이은 파업사태로 노조 통제에 실패했다는 당내 비판 목소리가 강력해지게 되었다.

에드워드 히스 총리는 취임일로부터 최대 5년의 임기가 주어졌으며 1975년 중반까지 총선을 미룰 수 있었다.[55] 그러나 광부들의 파업으로 인한 국가비상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1974년 2월 총선을 실시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보수당도 노동당도 제1당을 차지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버리면서 연임을 노리던 히스 총리의 시도도 물거품이 되었다. 에드워드 히스 총리는 자유당과 연정 협상에 나섰으나 결렬되었고 결국 재선거를 선언하였다. 이후 치러진 1974년 10월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의원수 과반으로부터 3석을 초과하는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며 단독으로 집권하게 되었다.[56]

마거릿 대처 (1975년~1990년)[편집]

마거릿 대처 총리

보수당이 야당으로 전락하자 에드워드 히스 대표는 당내 지지력을 상실하였고 이어진 1975년 영국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마거릿 대처 후보가 신임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보수당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대표가 된 마거릿 대처는 1979년 영국 총선에서 단순한 공약목록을 벗어나 당의 철학에 초점을 맞춘 공약집을 선보였고, 노동당의 경제실책에 대한 심판 분위기에 힘입어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영국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57]

마거릿 대처 총리는 전후합의에 기반한 온건자유주의 노선을 버리고 그간 국유화, 강력노조, 과도규제, 높은 세율, 관대한 복지국가 등을 용인해왔던 당 정책을 철폐하였다.[58] 대처 총리는 국민 보건 서비스 (NHS)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고 냉전시대에 걸맞은 전후합의를 추진하기는 하였으나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해체하고 타도하려는 자세에 임했다. 특히 전후합의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우파 이념으로서 '대처리즘'을 만들었는데 이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밀턴 프리드먼 등의 영미권 석학들의 자유주의적 사회경제이념을 기반으로 하였다. 대처 총리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정부정책이 범람하면서 영국 경제의 장기적인 침체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대처 정권은 노동조합의 권력을 억제하고 공공산업과 공공시설을 민영화함으로서 공적 분야를 자유시장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존 메이저 (1990년~1997년)[편집]

야당 시절 (1997년~2010년)[편집]

재집권 (2010년~2024년)[편집]

이념[편집]

보수당은 반동주의 혹은 수구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수용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59] 이는 아일랜드 독립, 선거권 확대, 복지제도 채택 등의 사안에서 자유당 및 노동당 정부의 개혁을 뒤집지 않고 인정한 채 그들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점에서 드러난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보수당 역대 선거 득표(1922~2019)
50%
40%
30%
20%
10%
0%
선거 당선자 득표율 당 대표
1835
273 / 658
42.8% 로버트 필
1837
314 / 658
47.6%
1841
367 / 658
50.9%
1847
325 / 656
42.7% 에드워드 스탠리
1852
330 / 654
41.9%
1857
264 / 654
33.5%
1859
298 / 654
34.3%
1865
289 / 658
40.5%
1868
271 / 658
38.4% 벤저민 디즈레일리
1874
350 / 652
44.3%
1880
237 / 652
42.5%
1885
247 / 670
43.5%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1886
393 / 670
51.1%
1892
313 / 670
47%
1895
411 / 670
49%
1900
402 / 670
50.3%
1906
156 / 670
43.4% 아서 밸푸어
1910.1
272 / 670
46.7%
1910.12
271 / 670
46.3%
1918
332 / 707
33.3% 앤드루 보너 로
1922
344 / 615
38.5%
1923
258 / 615
38.0% 스탠리 볼드윈
1924
412 / 615
46.8%
1929
260 / 615
38.1%
1931
470 / 615
55.0%
1935
386 / 615
47.8%
1945
197 / 640
36.2% 윈스턴 처칠
1950
282 / 625
40.0%
1951
321 / 625
48.0%
1955
345 / 630
49.7% 앤서니 이든
1959
365 / 630
49.4% 해럴드 맥밀런
1964
304 / 630
43.4% 앨릭 더글러스흄
1966
253 / 630
41.9% 에드워드 히스
1970
330 / 630
46.4%
1974.2
297 / 635
37.9%
1974.10
277 / 635
35.8%
1979
339 / 635
43.9% 마가렛 대처
1983
397 / 650
42.4%
1987
376 / 650
42.2%
1992
336 / 651
41.9% 존 메이저
1997
165 / 659
30.7%
2001
166 / 659
31.7% 윌리엄 헤이그
2005
198 / 646
32.4% 마이클 하워드
2010
306 / 650
36.1% 데이비드 캐머런
2015
330 / 650
36.9%
2017
317 / 650
42.3% 테리사 메이
2019
365 / 650
43.6% 보리스 존슨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Wolfram Nordsieck. “Parties and Elections in Europe”. 《parties-and-elections.eu》. 
  2. https://www.bbc.co.uk/history/british/victorians/home_rule_movement_01.shtml
  3. http://www.parties-and-elections.eu/unitedkingdom.html
  4. “보관된 사본”. 2019년 6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6월 11일에 확인함. 
  5. Wheeler, Brian (2022년 9월 5일). “Tory membership figure revealed”. 《BBC News》. 2022년 9월 5일에 확인함. 
  6. Saini, Rima; Bankole, Michael; Begum, Neema (April 2023). “The 2022 Conservative Leadership Campaign and Post-racial Gatekeeping”. 《Race & Class》: 1–20. doi:10.1177/03063968231164599. ...the Conservative Party's history in incorporating ethnic minorities, and the recent post-racial turn within the party whereby increasing party diversity has coincided with an increasing turn to the Right 
  7. Bale, Tim (March 2023). 《The Conservative Party After Brexit: Turmoil and Transformation》. Cambridge: Polity. 3–8, 291, et passim쪽. ISBN 9781509546015. 2023년 9월 12일에 확인함. [...] rather than the installation of a supposedly more 'technocratic' cabinet halting and even reversing any transformation on the part of the Conservative Party from a mainstream centre-right formation into an ersatz radical right-wing populist outfit, it could just as easily accelerate and accentuate it. Of course, radical right-wing populist parties are about more than migration and, indeed, culture wars more generally. Typically, they also put a premium on charismatic leafership and, if in office, on the rights of the executive over other branches of government and any intermediate institutions. And this is exactly what we have seen from the Conservative Party since 2019 
  8. de Geus, Roosmarijn A.; Shorrocks, Rosalind (2022). 〈Where Do Female Conservatives Stand? A Cross-National Analysis of the Issue Positions and Ideological Placement of Female Right-Wing Candidates〉. Och, Malliga; Shames, Shauna; Cooperman, Rosalyn. 《Sell-Outs or Warriors for Change? A Comparative Look at Conservative Women in Politics in Democracies》. Abingdon/New York: Routledge. 1–29쪽. ISBN 9781032346571. right-wing parties are also increasing the presence of women within their ranks. Prominent female European leaders include Theresa May (until recently) and Angela Merkel, from the right-wing Conservative Party in the UK and the Christian Democratic Party in Germany respectively. This article examines the extent to which women in right-wing parties are similar to their male colleagues, or whether they have a set of distinctive opinions on a range of issues 
  9. Alonso, José M.; Andrews, Rhys (September 2020). “Political Ideology and Social Services Contracting: Evidence from a Regression Discontinuity Design” (PDF). 《Public Administration Review》 (Hoboken: Wiley-Blackwell) 80 (5): 743–754. doi:10.1111/puar.13177. S2CID 214198195. In particular, there is a clear partisan division between the main left-wing party (Labour) and political parties with pronounced pro-market preferences, such as the right-wing Conservative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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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편집]